이현지 임차인 '인더블랭크'





STORY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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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없는 스튜디오 오직사람"


- 인더블랭크 -




내로라하는 섬유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국내/해외 유수의 대학을 나온 디자이너들이 즐비한 대기업에서 정규직 디자이너가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름다운 것이 좋았고 내가 기획하고 연출한 것에 의해 누군가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후에 사수가 된 메인 디자이너가 "아이디어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든다. 너랑만 일하고 싶다"라는 다소 저돌적인 프로포즈에 덜컹 대기업 섬유회사의 정규직이 되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앞날은 창창해졌고 안정적이었다. 비포장 도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4년째 되는 날.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고 기획하는 일은 좋지만 그 이상의 일은 할 수 없었다. 내일을 예상할 수 있었고 다음주를 계획할 수 있었다. 예상하고 계획하는 일들이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때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캐나다로 가서 세차장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재미있지 않겠냐 했다. 안되면 어쩌냐 했더니 "아님 말고"라고 한다. 섬유조직과 세차장의 관계는 남편과 나의 맞지 않는 성격과도 같았지만 그 차이만큼 또한 흥미로웠다.



그 순간 생각했다. 그만두자. 내가 재미있는 걸 해보자. 그래, 뭐. 아님 말고.



3년만에 5개의 지점을 낸 이현지 대표의 인더블랭크 스튜디오는 이렇게 탄생했다.


캐나다 세차장이 아님에 의아한 것도 잠시 북유럽 스타일로 신혼집을 꾸미며 기록을 남겼던 이현지 대표의 웹 페이지 구독자가 20만을 넘어가는걸 본 남편이 손을 잡고 북유럽 한번 가보자고 했단다.



"3개월동안 북유럽에서 살며 보고 느낀걸 카카오스토리에 일기처럼 적었더니 구독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어요. 당시 북유럽 인테리어 인기덕도 있었지만 구독자들은 인테리어 그 자체에 높은 관심을 보였어요. 당시 한국에서 북유럽 스타일이 인기가 있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스타일이 따로 있다기 보다 삶 그 자체더라구요.그런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북유럽은 시간의 대부분을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요. 그러다보니 집을 꾸미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죠. 매일마다 무언가를 고치고 새로 만들고 바꾸는게 일상이에요. 그 안에서 꾸준히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어요.



신기하게 저희 집이 아닌데도 너무 안락했어요. 가족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구요.한국에 돌아와 보니 우린 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더라구요. 아무래도 오후의 삶이 거의 회사이다 보니..당연히 문화의 차이겠지만요.그렇다면 내가 만드는 공간에서라도 누군가들이 제가 느꼈던 느낌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도로 시작된 비즈니스에 남편(김진호 대표)은 바로 부동산을 찾아갔다.


20대 초반부터 유통사업부터 다양한 사업을 해왔던 김진호 대표는 레드오션이라서 더 자신 있다라는 말을 꺼냈다. 레드오션일 정도로 수요는 확실하니 중요한 것은 컨셉의 문제라는 것이다.



"무슨 자신감인가 싶었겠지만 주변에서 다들 말렸죠. 스튜디오 다 망해가는 추세라구요. 그런데 전 어떤 공간이 필요성이 있다면 반드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목적이 없지만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적어도 저에게는 정말 매력적이었거든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주변에서 뜯어말리던 "스튜디오의 목적없음"은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다용도의 목적"으로 이해되었다. 인더블랭크는 브라이덜 샤워, 프라이빗 모임, 와인 모임부터 웨딩 촬영, 돌 기념, 우정 사진 등 촬영부터 다양한 모임과 행사까지 이루어지는 살롱의 역할까지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인 스튜디오 렌탈 사업에서 인더블랭크가 3년만에 5호점을 내며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서야 살롱 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4년 전에는 살롱이라는 단어 조차도 어색했던 시기다



촬영 스튜디오가 몰려있는 홍대 인근과 연희동, 연남동은 이미 수많은 스튜디오들이 줄지어있었다. 당연지사 월세도 비쌌다. 망리단길이 유명해지기도 전에 망리단길 외곽에 있는 마포구청역 인근에 인더블랭크 1호점을 만들었다.



이현지 대표는 "애초에 스튜디오가 촬영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누구든지 이 공간을 이용했으면 했어요. 다만 누구나 오면 무엇을 하던 간에 편안한 곳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스튜디오가 모양을 갖춰나가더라구요. 오늘은 촬영을 하는가 하면 다른 하루는 돌잔치를 하고 있었죠. 무엇을 해도 어색하지 않는 공간이 되있었어요. 사람마다의 집이 다른 모양인 것처럼. 아, 통했구나 싶었죠."

이 대표의 말처럼 인더블랭크는 촬영, 모임, 스터디, 파티 등의 모든 역할이 가능한 멀티 스튜디오로 빠른 시간에 자리잡았다. 1회성 촬영으로 불안전한 스튜디오의 수익성을 살롱(모임 및 스터디)의 지속성이 보완했다. 2년 만에 인근에 2호점, 3호점, 4호점까지 연달아 오픈했다.보통 촬영 타입별로 비용차가 상이한 반면 공간을 쓰는 사람에게 역할이 달려있는 인더블랭크의 일정한 사용비 역시 단골 매출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3년 전 까지만 해도 마포구청 인근에 보기 드물었던 스튜디오는 인더블랭크를 중심으로 이제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이 생겨났다. 레드오션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중이다. 매출에 타격이 없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오히려 스튜디오 상권이 만들어져서 매출이 올랐다고 전한다.



인더블랭크는 3년차인 올해가 되자마자 또 새로운 스튜디오 상권을 탐구(=개발)하여 오픈 준비 중에 있다.게다가 이번에는 대형 스튜디오다. 컨셉은 비밀이지만 대형 스튜